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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의 K-Movie] 중앙아시아가 거듭 주목할 감독 세 사람 강제규, 홍상수, 김기덕
  • 전찬일
  • 승인 2019.01.0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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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홍상수, 김기덕 감독으로 검색해 포탈 네이버 이미지 메뉴에서 캡쳐한 사진들. 이들 세 감독의 인기를 고스란히 반영하듯, 포탈 사이 트에는 이들의 영화 제작 뒷이야기부터 대표작 포스터 이미지까지 이들에 대한 다양한 사진들이 넘쳐나고 있다.

지난 호에서 나는 세계 10위권 내의 한국 영화 산업 규모를 들여다본 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중심으로 지난 20년간 한국 영화가 문화‧예술적 견지에서도 주목할 만한 결실들을 맺어왔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 진단은 한국 영화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중앙아시아의 영화가 그 미래를 위해 최대한 참고하라고 역설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한국 영화 또한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지독한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오늘날과 같은 산업 규모와 문화‧예술적 수준에 도달했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성과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요인들이 오늘날의 한국 영화를 가능하게 한 것일까? 적잖은 요인들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그 으뜸 요인은 아무래도 인재들의 대대적 투신·이동을 들어야 할 것 같다. 다름 아닌 <올드보이>의 박찬욱은 그 대표적 인재 중 하나다. 박찬욱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열혈 시네필(Cinephile)로서 문학, 음악, 미술 등 영화 이외의 다른 문화·예술 분야에도 관심 많았던 사람이다. 감독으로서 그의 남다른 역량은 그와 같은 폭넓은 관심사와 소양, 기본기 등을 토대로 구축됐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박찬욱 감독이 처음부터 성공적 가도를 걸은 것은 아니다. 서구의 적잖은 영화 전문가들은 기록적 성공을 보인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 2000)를 그의 장편 데뷔작으로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는 그 영화 이전에 두 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박찬욱 특유의 B급 정서가 짙게 배어있었던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Moon is… Sun’s Dream, 1992)과 <3인조>(3 members, 1997)가 바로 그것들이다. 특히 <3인조>는 데뷔작부터 <아가씨>(The Handmaiden, 2016)에 이르는 그의 전작(全作) 중 가장 박찬욱답지 않은 ‘혼돈과 위반의 텍스트’(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노트 인용)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 두 작품은 관객들로부터 처절하게 외면 받았다. 그 탓에 박찬욱은 <공동경비구역>의 화려한 재기 이전에 각고의 8년을 보내야만 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하지만 그 고통의 세월은 훗날의 박찬욱을 가능케 한 으뜸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그 짧지 않은 세월은 무엇보다 박찬욱 그만의 탄탄한 기본기를 갈고닦는 기회의 장으로 승화됐다. 단언컨대 그 실패의 세월이 없었다면 <공동경비구역>도, <올드보이>도, <친절한 금자씨>(Sympathy for Lady Vengeance, 2005)도, <박쥐>(Thirst, 2009)도, <아가씨>도, 즉 오늘날의 박찬욱은 ‘부재’했을 것이다.

 

<은행나무 침대>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그리고 <악어>

임권택과 이장호, 배창호가 한국 영화를 이끌던 1980년대 중후반, 세 명의 문제적 감독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데뷔작들을 선보인다. <서울 황제>(Seoul Emperor, 1986)의 장선우와 <개그맨>(Gagman, 1988)의 이명세, <칠수와 만수>(Chil-su and Man-su, 1988)의 박광수가 그 주인공들이다. 그 뒤 1990년대를 거치며 그 세 명의 감독들에 이어 장차 한국 영화를 빛낼 숱한 인재들이 대거 출현했다. 그중 또 다른 세 명의 감독이 1996년 한 해에 주목할 만한 데뷔전을 치렀다.

한 명은 대중 상업영화 쪽이었고, 다른 두 명은 저예산 독립 작가 영화 진영이었다. <은행나무 침대>(The Gingko Bed)의 강제규가 그중 한 명이었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The Day a Pig Fell into the Well)의 홍상수와 <악어>(Crocodile)의 김기덕이 다른 두 명이었다.

돌이켜보건대 그 세 문제작과 세 감독들, 그리고 1996년이 한국 영화사(史)에서 차지할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성싶다. 그들이 만든 세 편의 영화는 한결같이 그간의 한국 영화들에서 보기 힘들었던 ‘썸씽 뉴 & 디퍼런트’로 평해질 만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영화에서 흔치 않은 판타지 멜로 영화로 분류되는 <은행나무 침대>는 “1995년 후반부터 붐이 일었던 전생 신드롬과 천년의 사랑 열풍이 사회적 현상으로 번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장국영, 왕조현 주연, 정도동 감독의 중국 영화 <천녀유혼>(A Chinese Ghost Story, 1987)의 한국 버전으로 손색없었다. 또한 그동안 조연으로만 취급되었던 악역, 즉 신현준이 분한 황 장군이 ‘1990년대 한국 영화의 페르소나’로 간주되는 한석규가 연기한 주연 궁중 악사 중문을 능가하는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는 위키백과를 참고해 인용한 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적확한 평가다.

사실 <은행나무 침대>의 성공은 그 뒤 한국 영화 산업의 새 장을 활짝 열 <쉬리>(Swiri, 1999)와 <실미도>(2003)에 이어 한국 영화 사상 두 번째로 ‘천만 영화’로 등극할 <태극기 휘날리며>(Taegukgi, 2004) 등 거작들의 기념비적 대성공을 예고하기에도 충분했다.

이들 세 감독에 대한 신문 기사가 1996년 초반부터 봇물처럼 터지 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먼저 강제규 감독의 '은행나무 침대'였다.(사 진 위 조선일보 1996년 2월 28일자),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는 홍상 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또 한 명의 스타 감독 탄생을 예고했다.(아래 사진 조선일보 1996년 4월 27일 자)

세 작품의 성공 이면엔 부산국제영화제도 한몫

구효서의 장편소설 《낯선 여름》을 원작으로 만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또 어떤가? 이 영화는 어느 날 파란 하늘에서 불현듯 내려친 천둥과 번개처럼 한국 영화계에 내린 ‘축복’이었다. 지난 10월 25일 선보인 <풀잎들>(Grass)까지 포함해 22편에 달하는 그동안의 홍상수 필모그래피 중 그 어느 영화도 이 데뷔작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저주’이기도 했다.

난 아직도 그 영화가 선사한 충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홍상수 감독과 전격 인터뷰까지 한 것은 그래서였다. 데뷔작이거늘 영화는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용호상과,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대상인 타이거상을 거머쥐는 파란을 일으켰다.

변변한 작품 하나 출간하지 못해 열등감과 피해 의식에 시달리는 소설가 효섭(김의성)은 유부녀인 보경(이응경)과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영화는 결벽증이 심한 보경의 남편 동우(박진성), 효섭을 사랑하는 극장 매표원 민재(조은숙), 그녀를 짝사랑하는 민수(손민석) 등 여러 인물의 감정이 얽히고설키며 옴니버스 3부 구성으로 전개된다.

“개인주의적인 세계관이 자리를 넓혀가던 1990년대, 이를 통해 바뀌어가던 우리 도시의 미시적 풍경들이 이에 입각한 작가적 시점에서 포착되어 펼쳐지는 것.”(2017년 제9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1990년대 한국 영화계에서의 희귀한 발견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당시 새로운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형식을 도입한 작품이다. 이는 1990년대에 등장한 코리언 뉴웨이브가 사회적 현실에 천착하는 일종의 계몽적 텍스트로 자리매김하였던 것과는 비교된다. 일상을 지배하는 욕망과 인정 투쟁을 통해 삶의 민낯을 드러내 보이는 이 영화의 독특함은 홍상수 영화의 원형이 되었다.”(포털 다음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은행나무 침대>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 파노라마 섹션에서 선보였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칸, 베를린, 베니스를 뒤잇는 1급 국제 영화제들에서 최고 영예를 안을 수 있었던 것도 기대 반 우려 반 개최됐으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공을 거둔 부산영화제에서 ‘발견’됐기에 가능했다. 이렇듯 부산영화제는 첫 회부터 ‘쇼 케이스로서 영화제’의 기능을 입증한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화제작 <악어>에 대해 호평하고 있는 조선일보 1996년 11월 6일 자 기사. 한국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시작한 1996년은 본격적인 1,000만 관객 시대를 여는 2,000년대의 새로 운 예고편이기도 했다.

1996년을 특별한 한 해로 만든 세 감독

뒤를 이어 김기덕 감독의 <악어>는 그 이듬해에 개최됐던 제2회 부산영화제에서 선보인다. 애당초 흥행과는 무관한 이 영화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비해 비평적으로도 별다른 지지를 받지 못했다. 나를 포함한 극소수의 평론가 외엔 <악어>를 일반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외면하다시피 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세련된 서구적 포스트 모더니즘과는 거리가 먼 영화의 날것 그대로의 조야함이 주된 이유였다.

이 영화의 제목은 한강변에 살면서 자살한 사람들의 시체를 유기시켜 유족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용패(조재현)의 별명에서 따왔다. 그의 곁에는 앵벌이 소년(안재홍)과 깡통을 주워 파는 노인(전무송)이 함께 산다. 현정(우윤경)이라는 여자가 자살하던 날, 악어는 그녀를 건져내 살려주지만 그녀를 폭행하고 강간하면서 성적 만족을 취한다. 보다 못한 앵벌이 소년과 노인이 현정을 도망시켜주지만 어인 일인지 그녀는 악어의 주변을 맴돈다. 자신의 주변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현정에게 악어는 처음으로 인간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간단한 줄거리 소개만으로도 김기덕 영화 세계의 어떤 진수가 전달된다. 삶에 내재된 인간 존재의 폭력성, 잔혹함이랄까. 페미니즘 진영에서 그를 향해 그토록 맹공을 퍼붓는 까닭이 짐작된다. 그래서일까,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 노트도 양가적(ambivalent)이다. “키치적인 감수성으로 만들어낸 영상이 이채롭다. 영화는 도시 주변부에 사는 소외된 사람들의 현실을 다루기보다는 새로운 표현들을 시도해보는 데 주력한다… 마치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수중 촬영 장면은 신선하지만 욕망을 위한 진정한 탈출구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강렬한 영상만이 남을 뿐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다시 강조컨대 강제규, 홍상수, 김기덕과 그들의 데뷔작들은 1996년을 한국 영화사(史)의 아주 특별한 한 해로 만들었다. 그들은 그 이전과 그 이후를 잇는 가교이기도 했다.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Green Fish, 1997)부터 <공동경비구역>에 이르기까지 몇 년에 걸쳐 출현하는 일군의 한국 영화들 면면은 가히 눈부셨다. 물론 김의석 감독의 <결혼 이야기>(Wedding Story, 1992), 임권택의 <서편제>(Sopyonje, 1993) 등 그 이전의 몇몇 영화들도 특별한 눈길을 요한다. 이제 그 이야기들은 다음 호로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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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  cho@uzkor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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