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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hKor Street] 맛집 명가 'KDY호텔 한식당'타슈켄트 외교가에도 소문난 한식 가든파티 명소
  • 배고운 통신원
  • 승인 2018.09.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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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물론 친절과 분위기까지 압도한다. 호텔손님들에게 간단한 아침식사를 챙겨주려고 시작했던 식당이 이젠 호텔 유명세와 맞먹는 한식전문점으로 우뚝 섰다. 호텔 뒤편의 널찍한 정원에서 가든파티를 즐기려고 찾는 외국인 손님들도 적잖은 곳. 타슈켄트 한인사회의 사랑방이자 우즈베키스탄 한식 한류바람의 진원지인 KDY한식당의 명가(名家) 비결을 살펴봤다.

글·사진 | 배고운(타슈켄트 주재 통신원)

 

KDY호텔 입구 모습. 호텔을 찾았던 이날의 하늘 모습이 특히 맑아 많은 여행객들의 가 슴을 설레게 했다.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책을 집필하는 내내 KDY호텔에 머물렀습니다. 밤새 책 쓰는 일에 매달리고 아침에 먹는 다양한 한식요리가 큰 힘이 됐습니다. 특히 집필 막바지에는 체력이 달려 많이 힘들었는데, 그때마다 다양하게 선택해 먹을 수 있는 여러 메뉴가 있어 입맛을 돋우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책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인물열전의 조철현 작가는 책 출간 두 계절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KDY한식당의 음식 맛이 그립다고 입을 뗐다. 책의 서문을 통해서도 ‘현지 체류 내내 맛있는 한국 음식을 차려준 KDY호텔 식구들에게 고맙다’고 썼던 그는 그 뒤에도 타슈켄트를 방문할 때마다 그 맛이 그리워 이 호텔에만 묵는다.

“아침 일찍 호텔 뒤편의 널찍한 정원으로 나가 모닝커피 한 잔 하면서 다음 쓸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으면 아침 준비를 하던 식당 직원들이 다가와 활짝 웃으며 반갑게 인사하던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그들의 밝은 아침인사가 타슈켄트의 가을하늘만큼이나 청량하고 상쾌해 밤샘 원고 작업도 피곤하지 않았던 기억이 맛깔스러웠던 아침밥상 만큼이나 유쾌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는 직원들의 친절함 또한 이 음식점의 ‘명가 비결’ 중 하나라고 칭찬했다. ‘안녕하세요?’ ‘맛있게 드세요’ ‘반찬 더 가져다 드릴까요?’ 등등, 말은 서툴지만 교육받은 그대로 한국말로 인사하고, 표정 또한 우리식 그대로 따라 하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진정성이 타지의 낯섦과 오랜 여행의 피로감까지 잊게 해줬다는 것.

KDY호텔 한식당 뒤뜰 정원에서는 종종 우즈베키스탄 주재 외국 대사관 관계자의 한식 파티가 펼쳐진다.

최재욱 고려대 의과대 교수 또한 이 음식점의 단골손님이다. 타슈켄트 국립의과대(TMA)와 고려대 의과대학이 함께 추진하는 프로젝트로 우즈베키스탄을 자주 찾는 그는 KDY한식당의 꽁보리밥과 청국장, 콩비지찌개 맛에 흠뻑 빠져 있다. 안식년을 맞아 격월로 한 달가량씩 타슈켄트에 머무는 그는 직원들 이름까지 모두 외울 만큼 이 식당과 친숙하다.

“최 교수님은 저희 직원들 하나하나에게 가족처럼 아주 자상하게 잘 대해 주세요. 직원들 이름과 생활형편까지 물어보면서 조금 어려운 듯한 직원에게는 남몰래 챙겨주기도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직원들도 교수님을 무척 좋아하지요. TMA 연구센터 개원식 때는 최 교수님이 고려대 높은 분들과 함께 오셨는데 족발냉채와 쟁반국수를 아주 맛있게 잡수시고, 후식으로 내드린 떡볶이까지 아주 만족하게 잡숫고 가셔서 정말 흐뭇했습니다.”

최영라 사장은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더욱 잘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선다며 7월에는 방학을 맞아 타슈켄트를 찾는 대규모 대학생 봉사단원들이 예약돼 있는데, 칠랴(Chilla · 40일 간의 폭염) 기간인 만큼 그들의 입맛에 맞는 특별한 보양식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게 웃었다.

KDY호텔 한식당의 최영라 대표 모습.

1999년부터 타슈켄트 정착, 처음엔 ‘웨딩숍’ 운영

최영라 사장이 우즈베키스탄과 인연을 맺은 건 1999년부터다. 중견기업의 30대 법인장으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왔다 타슈켄트에 눌러앉은 지 내년이면 어느덧 20년이다. 그녀가 이곳에 머물며 처음 펼친 사업은 웨딩숍이었다. 손으로 하는 일은 뭐든 자신 있었던 그녀의 웨딩숍은 우즈베키스탄 부유층들로부터 즉각 호감을 샀다.

“한국에서부터 웨딩숍을 했던 건 아니고요, 우즈베키스탄으로 오기 전 속성으로 메이크업과 헤어, 드레스, 턱시도, 꽃꽂이 같은 걸 배워서 왔습니다. 식구들과 함께 웨딩숍을 시작했는데, 제부는 사진 촬영을 맡고, 남동생은 사진인화를, 그리고 저는 메이크업과 드레스 부분을 담당했지요. 그렇게 식구들이 호흡을 맞춰 웨딩숍을 시작했는데, 한국풍을 좋아하는 우즈베키스탄 부유층들이 많이 연락을 주셨어요.”

아직은 웨딩앨범 같은 럭셔리 상품조차 없던 시절. 그녀가 운영하는 한국식 웨딩숍은 금방 입소문을 탔다. 드레스 또한 서울에서 맞춰왔다. 드라마 한류바람이 일면서 한국연예인들의 드레스 코드가 우즈베키스탄 신부들의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되었어요. 기존의 우즈베키스탄 웨딩숍들과 차별성이 컸으니까요. 사진액자만 해도 저희는 사진과 액자가 분리되지 않도록 잘 접착해서 앨범에 꽂았는데 여기 숍들은 그냥 꽂고 있었어요. 사진도 저희 숍만큼 큰 사이즈의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곳이 없었지요.”

하지만 최 사장의 대박 행진은 디지털카메라 열풍에 밀려 멈칫했다. 결국 14년가량 이어왔던 웨딩숍 사업을 접고 남편이 운영하던 호텔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우즈베키스탄 사업 제2라운드를 맞게 됐다. 손으로 하는 일이라면 모든 게 자신 있었던 그녀의 2라운드 사업 역시 손끝 맛으로 시작했다.

KDY호텔 한식당 정원에서 펼쳐진 가든파티에서의 전통춤 축하 공연 모습.

식당 일 역시 처음엔 쉽지 않았겠어요.

웨딥숍을 접은 뒤 제부와 남동생은 한국으로 돌아갔지요. 그리고 저는 남편이 하던 호텔사업을 돕기 시작했는데, 간단하게 조식만 제공하던 호텔이다 보니 식당 생각까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손님이 점점 늘기 시작하면서 음식 요청까지 덩달아 늘어났어요. 삼겹살 좀 구워주면 안 되겠느냐, 시원한 매운탕이 먹고 싶다 등등, 손님들의 요구 사항이 늘면서 거절하기도 좀 그렇고 해서 식당 일을 본격적으로 해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인데, 사실 그때까지 웨딩숍 일이 바빠 내가 주방 손 뗀 지가 꽤 오래 됐던 일이라 처음엔 엄두초자 안 났어요.

 

그런데 어떻게 지금은 이렇게 소문난 요리사가 됐는지 궁금하네요.

처음엔 한국에서 요리사를 모셔왔어요. 그런데 그분은 처음부터 이곳에 본인의 식당을 열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주방장이 그렇겠지만 자기 식당을 갖는 것이 꿈이잖아요. 그런 일을 한두 차례 더 겪으면서 제가 직접 나서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러면서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뒤져가며 정말 열심히 요리 공부를 했어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저의 입맛에 맞게 저만의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걸 지인들이 먼저 먹어보고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계속 반복하다보니 점점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초창기 시절 제가 만든 소스와 내 방식대로의 레시피로 요리를 잘 만들어 내던 좋은 고려인 아주머니를 만나게 된 것도 큰 행운이었고요.

KDY호텔 한식당의 모든 요리들은 최영라 대표의 정성 어린 손끝 맛에서 나온다. 그녀는 음식점 초창기 시절 자신의 연구로 만든 한식 레시피를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제대로 조리했던 고려인 출신 직원의 도움이 컸다고 고마워했다.

메뉴가 꽤 다양한데 이 모든 걸 독학으로 익히셨군요.

처음에는 몇 가지 안됐어요. 삼겹살처럼 쉽게 해먹을 수 있는 메뉴만 있었는데, 개업 시절 주방장님 보조하면서 맛봤던 것들과 곁눈으로 익혔던 요리법들을 떠올리며 저만의 방법을 추가하면서 조금씩 메뉴를 개발해나간 거지요.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건데 한식이 참 까다로워요. 숟가락 젓가락 놓는 위치며, 어떤 음식을 주문하느냐에 따라 나가는 반찬과 양념도 달라져요. 돼지갈비 시킬 때, 삼겹살 시킬 때, 족발 시킬 때 나가는 반찬과 소스들이 다 달라요. 그러니까 이런 다양한 한국음식을 혼자 연구하며 배우면서 시행착오도 참 많았지요.

 

숯불 돼지갈비부터 족발냉채에 묵은지 김치찌개까지

KDY한식당의 메뉴 중에는 돼지갈비와 삼겹살, 소한마리 등 고기요리들이 많다. 특히 숯불에 구워먹는 돼지갈비가 인기다. 여름에는 족발냉채 또한 많이 찾는 편. 최영라 사장은 맛있는 족발냉채 요리법을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출장 교육까지 다녀왔다. 그러면서 맛있는 족발요리 맛은 족발 삶은 물에서 나온다는 비법까지 터득했다.

KDY한식당의 또 다른 별미 중 하나는 김치찌개와 고등어조림이다. 이 음식에 들어가는 ‘최영라 표 묵은지’가 그녀만의 오랜 연구 끝에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한 밑재료로 거듭 났기 때문이다.

“묵은지를 만들기 하루 전날 양파와 무를 갈아서 고춧가루를 먼저 섞어 불려놓으면 맛도 좋아지고, 김치의 색깔도 예뻐져요. 그리고 묵은지용 배추를 절일 때는 소금도 평소보다 더 많이 하고 5시간 정도 단시간에 절여낸 후, 깨끗하게 물에 씻어 짜낸 뒤 양념을 많이 넣지 않고 적절하게 소금 간을 해서 버무린 후 차곡차곡 담아 그날로 바로 땅속에 묻지요.”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진 묵은지는 11월쯤 땅속에 묻혔다가 이듬해 3월 꺼내져서 두 포기, 세 포기씩 일회용 봉투에 담겨 냉동고로 들어간다. 그리곤 음식재료로 쓰이기 하루 전 날 냉동고를 나와 타슈켄트를 찾는 많은 사람들의 감칠맛 나는 입맛으로 다가가게 된다는 것,

 

널찍한 야외 정원이 참 인상적이에요.

최근에 타슈켄트에 와계신 15개국 대사관의 국방무관님들께서 휴가 가신 세 분을 제외하곤 모든 무관님들이 참석해서 가든파티를 하셨어요. 그 뒤엔 또 무관님들 가족 40명가량이 찾아 저녁식사를 하고 가셨고요. 이런 모임 때는 뷔페로 준비해요. 너무 매운 한식은 외국인들이 먹기 어려워서 불고기나 잡채, 족발 같은 맵지 않은 요리와 송편과 약식 같은 한국적인 것들을 함께 준비해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맛을 느끼도록 해드리고 있답니다.

최근 타슈켄트 국립의과대학(TMA)과 국제학술심 포지엄 등 대규모 행사를 치른 고려대 의과대 교수진 및 관계자들이 KDY호텔 한식당을 찾아 가든 만찬을 하고 있다. 이 한식당에서는 이처럼 대규모 파티가 자 주 펼쳐진다. 야외에서 많은 인원이 함께 앉아 맛있는 한식을 즐기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는 타슈 켄트에서 이 식당이 거의 유일하다.

그런 중요한 파티 때는 테이블 세팅에도 많은 신경이 쓰이겠어요.

네, 맞습니다. 웨딩숍 사업 경험이 그럴 때는 또 많은 도움이 돼요. 테이블보며 꽃장식이며 파티장의 향기까지 신경 써서 준비를 합니다. 테이블보는 하얀색으로 준비하고, 꽃장식은 제가 직접 꽃을 사 와서 꽃꽂이를 하고, 환기도 시키고 그러지요. 저희는 정원이 예뻐서 전체적으로 하얀색으로 테이블 세팅을 하고 흰색과 초록색 풍선을 옆으로 놓고 음악도 잔잔하게 준비하곤 하는데, 가급적 한국적인 단아한 미를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체 손님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지난 6월엔 40여분의 고려인 행사도 치렀지요. 한식당 가운데 많은 인원을 야외에서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으니까 저희 식당을 많이 예약해 주시는 것 같아요. 7월에는 한국에서 오는 4~50명가량의 대학생들 식사 예약이 되어 있어요. 한국의 대학생들이 요즘은 방학 때 해외로 봉사활동을 많이 나가는데, 그 학교 교수님이 저희 호텔과 식당 뒷마당을 둘러보더니 마지막 날 전체 회식을 이곳에서 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바로 예약하셨어요.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우즈베키스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몇 나라를 방문하는데, 요즘 각 집마다 귀한 아이들이다보니 학생들의 어머님들이 학생들이 묵게 되는 호텔의 위치며 시설이며 규모 등을 까다롭게 살펴보고 난 후 아이들을 보내서, 여러 가지 사항을 체크한 후 부모님들께 보여드린다고 하시더라고요.

타슈켄트 외교가에까지 폭넓게 알려진 KDY호텔 한식당의 전통 음식들. 1999년 우즈베키스탄과 처음 인연을 맺은 최영라 사장은 우즈베키스탄 내 한식 한류 바람의 최고 전도사 중 한 사람이다.

직원들의 애경사 챙기는 꼼꼼함이 친절로

KDY 직원 수는 20명가량이다. 그러다보니 매달 생일을 맞는 직원만도 거의 두 명꼴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생일잔치는 풍성하다. 집에서 한 차례, 직장에서 동료들과 다시 한 차례. 최영라 사장은 생일을 맞는 직원들과 케이크 자르는 일이 즐겁다. 그들의 행복이 곧 고객의 행복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직원들의 그 밖의 애경사를 챙기는 일 또한 적극적이다. 이 날도 직원 한 사람의 아들이 간암 진단을 받았다 해서 조기 퇴근을 재촉했다. 이럴 때는 봉투 챙기는 성의 또한 빼놓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직원들의 표정에는 언제나 웃음기가 가득하다.

“아파서 지금은 일을 못하시지만 저와 12년 동안 같이 일한 분이 지금 70세이신데, 아직도 음식 만들어서 그 분을 찾아뵙고 있어요. 그분도 ‘여성의 날’이나 제 생일을 기억해서 찾아오시곤 하고요. 그 분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대요. ‘나는 한국인 딸이 한 명 있다’고요. 저랑 싸우기도 하고 서로 서운해서 울기도 하며 12년을 함께 일했어요. 아파서 그만두겠다고 하던 날 제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갑자기 한 쪽 팔이 꺾여나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녀의 사람 사랑은 우즈베키스탄 한인사회에도 스며있다. 남편이 2대째 한인회장으로 일하다보니 봉사할 일은 더욱 많다. 지난 봄철 체육대회 때도 준비 단계부터 집행부 점심식사는 그녀 몫이 됐다. 또한 체육대회를 마친 뒤에는 여성회 회원들을 초대해서 식사대접도 했다.

그밖에도 소리 소문 없이 그녀가 해야 될 일은 많다.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국빈 방한 이후 양국 간 교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2월의 비자 면제와 맞물려 우즈베키스탄을 찾는 한국인 방문객 수도 부쩍 늘어났다. 상황이 그런 만큼 한인회장의 역할 또한 전례 없이 커졌다. 따라서 남편이 운영하는 KDY호텔은 물론 KDY한식당 역시 이젠 공적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전화번호 : 998-90-999-1231, 인터넷 전화 : 070-7945-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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